IBM®
메인 컨텐츠로 가기
    Korea [국가변경]    이용약관
 
 
   
        제품    서비스 & 솔루션    고객지원 & 다운로드    회원 서비스    
한국 developerWorks   >  dW Column  > developerworks
개발자 책꽂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양유성양유성 yooseong@debian.org

필자는 데비안과 오픈소스 운영체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외로 인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을 주업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연구원이다.



2007년 11월 6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지음), 장상환(옮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책벌레, 2006년 3월)



어떤 시대와 그 시대사상을 이해하려면 첫째 지리적•기후적 여건과 생산방식 같은 물질적 토대, 둘째 정치체제와 계급 분화 같은 사회정치적 요소, 마지막으로 심성구조와 지성사적 고려가 필요하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생산방식은 가내수공업에서 대규모 매뉴팩처로 변했고 신의 자리에 국가가 위치하면서 국가가 종교 대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였고 기독교 교리가 중심이었던 중세철학에서 벗어나 주체적 개인과 함께 계몽주의가 나타난다. 결국 기본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이 모두 근대화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이 중에서 물질적인 면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잘 설명해준다.

우선 목차를 잠시 살펴보자.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이고 2부는 ‘자본주의에서 어디로’다. 세부 목차를 보면 1장에서 중세의 3계서제(階序制)를 설명하고 2장에서는 부르주아 계급의 맹아가 등장하는 배경과 상황을, 3장은 도시의 형성을, 4~5장은 3계서제 붕괴를 언급하며 1부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계급 분화과정을 다룬다. 자본주의 성장을 주로 다루는 2부는 14장에서 자본주의의 기본 바탕인 화폐경제 성장을, 15장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생산수단을, 16~17장에서는 임금노동과 사유재산에 대해 말하고 있고 18장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인간 노동과 계급 투쟁의 역사를, 19~21장은 이윤이라면 자본가들은 “휴대용 핵무기”라도 서슴지 않고 만들 자본주의의 절정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고 제목만 살펴봐도 전체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휴버먼의 책으로 들어가보자.

중세의 노동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의 개념과 완전히 달라서 토지 경작과 작물 재배, 양모를 위한 양치기 같은 일로 이루어졌다. 지금의 농민이 하는 일과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어떤 대가도 없이 오직 자신이 속한 영주를 위해 일을 했다. 이런 노동은 모두 농노라는 신분의 사람들이 담당하였고 다른 신분인 영주 혹은 기사나 교회의 성직자는 노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신분에 속한 이들은 모두 토지를 소유했으며 경우에 따라 토지 면적이 막대했고 그 토지가 모여 장원을 이뤘다.

봉건시대의 경제 기반은 이 장원에 기초를 두었다. 봉건 장원제의 특징은 첫째, 영주만을 위한 경작지가 있었고 영주의 경작지를 제외한 경작지는 농노가 경작을 하여 이 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영주 직속 경작지의 경우에도 농노가 농사를 지었다. 이 곳의 우선권은 어떤 다른 경작지보다 항상 위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농노가 자신의 몫을 제대로 챙기기란 힘들었다. 영주에게는 노예가 있었으나 경작은 항상 농노가 담당하였고 노예와 달리 농노는 독립적으로 경작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영주는 농노를 매매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농노에게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영주의 보유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원의 관습이 곧 법이고 규칙이었기 때문에 농노는 그 관습을 따라야 했다. 이렇듯 토지는 중세에 있어서 영주, 더 나아가 모든 토지의 소유주였던 국왕에게 모든 부의 원천이었고 전쟁의 원인이었으며 토지가 많아지면 자신의 군사력을 맡을 충성스런 봉신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중세에는 교회의 영향력이 대단했는데 특히 세속적인 영역이라 생각할 수 있는 토지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교회의 토지는 지금도 존재하는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의 기부를 통하거나 국가로부터 전쟁 전리품으로 얻었다. 주교•수도원장의 위치는 백작•후작의 위치와 동등했고 토지 분배는 대토지 장원의 영주와 비슷했다. 이렇게 토지를 바탕으로 교회는 초기에 “교육 장려, 학교 설립, 질병 치료, 가난 구제”와 같은 일을 하며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였다. 하지만 토지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고 신부들의 권세는 어떤 영주보다 막강했다. 정리해 보자면, 토지를 중심으로 교회는 ‘정신적 도움’을, 영주들은 ‘군사적 보호’를 주었다. 그 대가로 농노로부터 노동의 산물인 농산물을 가져갔다. 3계서제는 중세의 확고한 신분제였다.

중세시대는 장원중심 경제체제였기 때문에 자급자족이 기본이었고 물물교환은 매우 미비했다. 도로 문제, 화폐 부족, 도량형 미통일 등도 교환경제 발전의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런 중세의 장원중심 경제는 약탈과 토지 획득을 위한 십자군 전쟁으로 상업 발달이 촉진되면서 점차 무너져갔다. 십자군이 내세웠던 “복음전파와 성지수호”는 명목상의 이유였고 교회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다. 십자군 원정으로 유럽 남부의 지중해 무역과 북부의 바다 무역이 만나면서 상업이 더욱 발전했고 이를 계기로 일정 기간마다 장이 서는 ‘정기시’가 열리기 시작했다. 정기시의 규모는 점차 커졌고 해외 물품거래와 화폐거래도 함께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영주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상업거래로 자신의 부가 늘어나자 상인들에게 부과금이나 통행세를 면제해 주기까지 했다. 정기시가 열리는 영역이 커지면서 동시에 도시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상업거래가 커지고 상인들은 자신을 외부세력에서 보호하기 위해 ‘길드’나 ‘한자’라는 조합 형태로 뭉쳐 자신들의 권리를 조금씩 팔기 시작했고 상인들은 자신의 일에 해가 되면 폭력까지 써가며 자신의 몫을 철저히 보호했다. 나아가 국가와 결탁하며 길드의 시장 지배력을 키워나갔다.

교회의 영향력이 컸던 봉건사회에서 어려운 사람이 빌린 돈에 대해 이자를 받는 일은 죄악으로 취급되었다. 이자는 결국 인간이 시간을 이용하는 일이었고 중세에서는 시간은 오직 신의 것이었기 때문에 ‘이자’라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속의 이득에 눈이 멀어버린 교회는 스스로 이자를 챙김으로써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상인들에게 압박을 가하여 사업영역 확대를 방해했다. 결국 교회와 상인들의 충돌은 불가피했고 봉건영주처럼 교회도 점차 교리를 완화하고 충돌을 일으키는 부분을 없앴다. 또한 교회는 농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시작되자 교회의 이익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농노 해방을 반대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교회는 농노를 이런 식으로 가둬둘 수 없었다.

근대에 이르러 종교의 위치를 대신하여 국가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상인을 포함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정치, 사회적 영향력과 지적자원, 부를 군주국가가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국가는 반대급부로 부르주아지의 경제 사회적 특권”을 늘려주었다. 이런 흐름에 끝까지 저항했던 세력이 바로 교회였다. 교회는 국가에 세금 납부를 꺼려했고 재판과 같이 근대국가가 행하는 일을 계속해서 대신하려 하였다. 부르주아 계급은 종교개혁이란 이름으로 교회를 공격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봉건제 몰락을 앞당겼다.

도시 상업의 발달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역할 분담이 뚜렷해지고 농촌은 도시시장에 농산물을 공급하기에 이른다.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 토지를 개간하여 이용하였다. 미개간지를 개척하고 이렇게 개척된 토지는 화폐로 지대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농산물로 지대를 대신했던 장원제도가 흔들리게 된다. 농노들은 개간지에서 얻은 잉여 농산물을 팔아 조금씩 부를 늘려갔다.

흑사병과 같이 대규모 사망자를 만들어낸 유행병은 노동력의 대규모 감소로 이어졌고 농노가 부족해지자 농노들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점차 커졌다. 17~18세기 엔클로저 운동(울타리 치기 운동)이 확산되면서 농촌에서 쫓겨나는 농노들은 도시 상공업이 발달하며 도시로 유입되었다. 흑사병 등으로 노동력이 급감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인상 상한도 일시적으로 없어졌고 임금을 더 높이 부를 수 있었다. 도시에 내몰린 농노들은 봉건시대의 틀을 벗기 시작하고 “계약”에 의한 임금노동자가 되면서 계급 분화는 가속화되었다. 임금노동자들은 자신을 고용한 부르주아들에 대한 계급 투쟁까지 일으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쟁에서 부르주아가 승리했다. 근대 자본주의 모습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갔다.

‘지리상의 대발견’으로 해외무역이 활발해졌고 교역이 늘어나자 회사 크기가 커지면서 새로운 회사 설립에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 돈을 충당하기 위해 ‘상인조합’을 만들어 상인들로부터 조금씩 돈을 모아 주식회사를 만들게 된다. 점차 회사가 커지고 사업을 통해 얻은 잉여자본이 생기게 되면서 잉여자본을 다시 공업생산에 투자하였다. “봉건주의 시대의 쭌프트(Zunft)적 경영방식”은 완전히 사라지고 잉여자본의 도움을 받아 “대규모 매뉴팩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또한 국가는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수출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보호관세를 마련하고 외국의 숙련 노동자의 정착을 유도했고 발명과 기술을 장려하였다. 이제 국가는 자신들의 이익에 혈안이 되었기 때문에 국가 사이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따라서 이 충돌의 결과인 전쟁에 항시 대비하기 위해 병사 양성과 선박 제조에 집중하였다. 예를 들어 17세기 네덜란드의 해상 장악을 막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는 조례까지 제정해 가며 대항했고 식민지를 늘려가며 그 세력과 부를 확장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정복한 식민지는 종주국과 반대로 항상 착취당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열악하였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던 부르주아 계급은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봉건사회의 관습 폐기에 앞장섰으며, 의복도 장식 차원에서 벗어나 돈벌이에 적합하게 실용적으로 변화시켰고 자유방임과 “이성의 지배”가 그들의 목표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부르주아 계급의 요구와 목표는 프랑스에서는 혁명으로까지 이어진다.

부르주아들은 전세계적으로 봉건제에 맞서 치열하고 결정적인 세 가지 전투를 통해 자리매김했다. “첫째는 종교개혁이었고 둘째는 큰 유혈사태 없이 진행된 영국혁명이었고 셋째는 위에서 언급한 프랑스혁명”이었다. 영국은 사업가와 귀족이 큰 문제 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프랑스혁명과 같은 유혈혁명을 겪지 않고도 변화가 가능했고 사업가는 자신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40년에서 1688년까지 영국에서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정치참여권을 얻고자 투쟁을 하였다. 어떤 형태건 결국 승리한 것은 중간계급이었고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봉건제에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이제 부르주아들은 정치적인 권리까지 확보되자 거칠 것이 없었고 “이윤 창출”을 가장 큰 목표로 하여 “상품과 자유교환”에 기초를 둔 전혀 다른 사회체제를 등장시켰다. 그 체제의 정점에 현재 우리도 서 있다. 바로 자본주의가 그 체제다.

서구 유럽의 현재 모습은 수세기에 걸쳐 이룩된 물질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고 이러한 물질적 토대와 함께 이에 걸맞은 정치체제와 인간의 정신이 있었다. “도덕적인 경계는 무너졌고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며 살아남은 자가 강한 사회”로 흘러갔으며 실제 많은 나라가 그런 과정을 겪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가 수세기에 걸쳐 겪은 앞서 설명한 일들을 IMF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경험했고 현재도 진행중이며 “자신의 재산이 권력”이 되고 어린 학생들이 “돈 많이 버는 일이 장래희망”이 되어버린 그런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2부의 내용은 자본주의의 맹아가 성장하여 발전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지은기가 마르크스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부르주아는 이제 상공업에서 얻은 이익으로 생산수단을 점차 장악하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에서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와 같은 국민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경제의 흐름을 설명하고 이론화하였고 존 로크와 토마스 홉스 등이 철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성격을 자신의 저술들에서 기술하였다.

19세기가 되면서 계급 분화가 심화되자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투입해 만든 생산물에서 소외되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치들에서 배제되는 것을 보고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개혁하고자 [[공산당 선언]] 같은 혁명적 팜플렛이 제작되고 유포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도 지속되고 있지만 중세를 무너뜨리고 근대를 앞당긴 자본주의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있다. 1940년대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현재의 시각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 역사를 알고 우파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널리 퍼진 한국 사회를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위로


   소셜 북마크

   mar.gar.in mar.gar.in
    digg Digg
    del.icio.us del.icio.us
    Slashdot Slashdot

참고자료

  1. 칼 마르크스(지음), 김태호(옮김) [[공산주의 선언]] (박종철 출판사)
  2. 강유원(지음)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뿌리와 이파리)
  3. 요제프 레만(지음), 설헌영 외(옮김) [[사회철학에의 초대]] (학민사)
  4. 에릭 홉스봄(지음), 김동택(옮김) [[자본의 시대]] (한길사)
  5. 에두아르트 푹스(지음), 이기웅 외(옮김) [[풍속의 역사 4]] (까치)



위로


[지난 developerWorks Column 보기]


사이트 여행

dW 커뮤니티
포럼 | 블로그 | Spaces
dW Student Community

로컬 컨텐츠

행사 및 세미나

기획 기사

개발자 입문

튜토리얼 및 교육

TOP 10 인기자료

SW 다운로드

RSS 피드

뉴스레터
  
자바스크립트가 작동이 중지되었습니다. 이 기능을 수행하시려면 브라우저에서 자바스크립스트를 작동시켜 주시거나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Special offers
IBM SOA Sandbox 시험판
dW Student Community
로보코드
코드 트레이닝


    IBM 소개 개인정보 보호정책 문의